인보성체수도회

자유게시판

상품화 되는 인간 관계는 또다른 폭력이다 스크랩 1회
작성자 : 홈지기(inbo)
등록일 : (최종수정 : )
조   회 : 130
스크랩 : 1
상품화 되는 인간 관계는 또다른 폭력이다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8

우리는 사물을 초대하거나 요청하지 않는다. 사물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사용하고 요구하며, 강요하고 조작하며, 필요하다면 파괴한다. 상품화 된 삶에서, 자기 가치와 자기 평가는 숫적인 생산, 소비, 경쟁에 의해 측정되고 우리는 서로에게 사물이 되어 버린다. 혹은 자주 서로에게 장애물이 된다.


숫자가 목표라면 갈등은 방법이다. 우리의 가치와 존엄성은 알고 자유롭게 사랑하는 능력에 뿌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지배의 역동성에 근거하게 된다. 상품과 상품 사이의 상호작용은 주체들 사이의 상호관계성과 공동협력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가격경쟁(정말 모든 사람은 가격을 갖고 있을까?), 숫자의 최우선성 그리고 상업적인 획일화, 지배, 반복, 물질적 교환 같은 모습들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회운동이 권력의 요구에만 천착한다면


이러한 맥락에서는, 요즘 정치-사회운동도 결국 권력을 추구하는 측면이 많다. 많은 흑인단체들이 평등과 정의에 관심을 쏟으면서도 그들을 억압했던 구조와 지배/순종의 가치체계 속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는데 더 관심을 갖는다. 또한 많은 여성 그룹들이 임금과 노동조건의 불평등함을 의롭게 항의하면서도 지배와 권력에 끝없이 관심을 둔다. 이런 경우에 폭력, 지배, 남성성에 대항하여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 의식혁명이 아니라, 그동안 사람들을 억압해 온 불의의 반복과 확대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이쯤되면 나타날 변화란, 불의가 더 넓게 확산되는 것이다. 또한 상호 묵인된 파괴현상이 국제간의 대화에 있어 기본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두려움, 권력, 위협 등은 선진화된 산업국가나 다국적 기업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 아니다. 제 3세계 국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소외, 폭력, 쾌락, 상대주의, 조작 등을 추켜세우는 소외 반동의 운동들은 상품화의 형태를 다시 소생시킨 것들이다.


이래서는 폭력과 지배의 고리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다. 단지 때와 자리에 따라 다른 색깔로 칠해질 뿐이다. 상품화라는 거의 전 우주적인 범주 속에서 대부분의 개혁은 지배를 다양하고도 역동적으로 변주하는 것 이외에 다름이 아니다.


여성들의 갈망, 인종, 믿음, 나이, 기술에 상관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요구하는 운동은 그 밑바닥에 중요한 주제가 도사리고 있다. 즉 우리는 남자와 여자를 인격체로 볼 것인가? 상품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람들은 대체할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계획된 파멸, 경쟁, 이념 그리고 기득권의 제단 앞에서 소모될 수 있는 존재들인가?


익숙해진 상품문화, 물건은 결국 우상이다


가장 문제되는 것은 우리가 익숙해져버린 상품문화이다. 억압자든 피억압자든, 비싼 옷을 입었든 싼 옷을 입었든, 전장에 있거나 분만실에 있거나, 부르주아든 노동자든, 범죄자이거나 대통령이든 모두 물건으로 인식되고 상품으로 받아들여져서 사고 팔며 대체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는 게 문제다. 


제도적 상품화에 저항하는 이들은 해방 운동에도 스며들어 있는 상품화를 비판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 개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은 권력, 강압, 폭력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믿음이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항상 돈을 둘러싼 권력과 이익지향의 경제체제, 환경오염, 자본주의에 의한 자기 이익 추구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거대한 축적은 어디서나 보이며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 같이 보인다. 그리고 그 언어는 절대화된 상품의 언어이다.


우리 문화는 현재  물질주의, 재물, 소비, 구매력, 경쟁 그리고 엄청난 경제적 착취의 신화에 잠겨 있다. 이러한 복음과 그안에 주어진 가치관들은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가리고, 국가나 공동체, 이웃의 요구 심지어 우리 주변에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응답하는 것까지 가로막고 있다. 우리는 물건이란 사용하고, 적이란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그렇지만 결국 물건은 우상과 같아서 죽은 것들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원출처]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문화적 저항의 영성>, 존 프란시스 카바나 신부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1996년 3월호

덧글 0
    이전글 : 일상 속에 깃드는 거룩함의 영성으로
    다음글 : 프란치스코 교황 : 9월 23일 오전 교황청 살라 레지아에서 ‘교황청 홍보를 위한 부서’의 모든 직원들과의 만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