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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두 칸에 밥을 꼭꼭 눌러 담았습니다 스크랩 1회
작성자 : 홈지기(in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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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두 칸에 밥을 꼭꼭 눌러 담았습니다 /   [민들레국수집 일기]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노숙하는 우리 손님은 제대로 식사할 수 있어야만 그나마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돈 없이 밥을 먹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하루에 두 끼 정도는 먹어야만 살 수 있는데, 두 끼나마 먹으려면 아주 부지런해야만 합니다. 무료급식을 하는 곳은 대부분 하루 한 번 밥을 나눕니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하는 곳도 없습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노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무료급식을 하는 곳과 시간과 요일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잘 알고 있어도 하루에 두 끼 이상 밥을 먹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무료급식을 하는 곳에 가서 먼저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휴일에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식당을 열어서 우리 손님들이 적어도 하루 두 끼 이상을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자율식당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쉬는 날로 했습니다. 대신 토요일과 일요일은 문을 열고 있습니다.

사스나 신종 플루나, 메르스가 유행할 때도 민들레국수집은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관공서에서는 이럴 때 민들레국수집도 다른 무료급식소처럼 문을 닫았으면 하고 바라지만 우리 손님들 때문에 식당 문을 닫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이 병에 걸리기 전에 굶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19 때도 다른 무료급식소들이 문을 닫았어도 문을 닫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일반 식당은 손님이 없어서 걱정합니다만 민들레국수집은 손님이 끊이질 않습니다. 손님들이 손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게 했습니다. 손 세정제도 내어놓았습니다. 문을 닫으라는 주위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그냥 버텼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손님이 식사하면서 기침이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혹시 코로나 19가 확진되어 문을 닫는다면 거리에서 지내는 우리 손님들은 대책 없이 그냥 굶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를 가지 못하는 어려운 노인이 식사하러 왔는데 감기 때문에 기침을 계속합니다. 오지 못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와서 식사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고민하다가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라도 사서 식사를 하실 수 있도록 돈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사진=서영남
사진=서영남

진정될 것 같았던 코로나 19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질 않습니다. 주변의 눈총도 심했습니다. 그래서 도시락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급히 도시락 용기를 주문했는데 배달이 늦습니다. 우선 김밥을 만들었습니다. 김밥을 두 개씩 손님들에게 드렸는데 우리 손님들 처지에서는 너무도 부족한 것입니다. 도시락 용기를 사흘 만에야 구해서 겨우 도시락을 쌀 수 있었습니다. 5칸 도시락에 밥을 담았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손님들에게는 밥이 모자랄 것 같았습니다. 노숙했던 이들의 조언을 듣고 두 칸에 밥을 꼭꼭 눌러 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사발면도 하나 넣고 김도 넣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빵과 과일도 넣어서 드릴 수 있었습니다.

도시락 반찬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맛있게 해 드릴까 고민하면서 조금씩 도시락 품질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마스크도 나눌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우리 손님들이 도시락 하나로 하루를 견딥니다. 이제야 민들레국수집에서 밥을 먹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이제야 알겠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는 많은 좋은 것들이 모입니다. 우리 손님들은 고마운 마음을, 어떤 분은 사발면을, 어떤 분은 마스크를, 어떤 분은 초코파이를, 어떤 분은 사과를, 어떤 분은 호두과자를, 어떤 분은 소독약을, 어떤 분은 김을, 어떤 분은 쌀을 나눠주셨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돌멩이로 끓인 수프’를 나누는 것처럼 우리 손님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진정되어서 우리 손님들이 다시 품위 있게 식탁에 앉아서 식사할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서영남 베드로
민들레국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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